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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내가 절반을 산 도시다. 성인이 된 대학교 때부터 살게 되어서 인천 토박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인천 사람들이 자주 먹는 간식이라고 하는 계란초는 유튜브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인천 토박이들이 쓴다는 방언도 전혀 모른다. 인천에 대한 나의 기억은 2000년대 후반부터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인천에 살아온지 20여 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런 말들이 인천을 대표하게 되었다.

마계인천.
이부망천.
 
2010년에 문학구장에서 야구 경기가 열렸을 때 번개가 친 모습을 기가 막히게 담아낸 사진을 보고 마계인천이라는 말이 붙었다. 

2018년 정태옥 의원은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같은 당 후보를 옹호한답시고 이부망천이라는 내뱉었으며 엄청난 비난을 받고 탈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말은 그때부터 큰 생명력을 얻어서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다. 심지어 이 단어를 사자성어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도시의 낙인이 찍혔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인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악마들이 사는 도시, 망해서 가는 도시에 사는 사람이 되었다.

인천의 범죄율이 서울보다도 낮으며 인구 300만의 광역시치고도 꽤 낮은 수준이라는 객관적인 통계자료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관습처럼, 습관처럼 인천은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고 위험한 동네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혼하면 부천으로 가고 망하면 인천으로 간다면, 인천에서 살다가 이혼하고 망한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얼마 전에 인천 출신의 배우이자 아이돌인 옹성우가 내가 살았던 아파트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천에 나고부터 쭉 그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하니(지금은 이사를 간 듯) 옹성우가 살았던 기간과 내가 살았던 기간이 겹칠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마주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작은 규모의 아파트인데도 말이다..

상인천초와 구월중이라는. 그야말로 인천 남동구의 구월동 주민이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옹성우의 약력을 보면서 옹성우는 어느 아파트나 주택에 살았는지 그동안 늘 궁금했다. 그런데 우연히 본 옹성우의 브이로그에서 내가 살았던 아파트의 모습이 보이자 놀라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옹성우는 브이로그에서 그 아파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기억을 회상했다. 그 아파트가 재개발되기 전에 3층짜리 아파트였다는 것도 옹성우 덕분에 알게되었다. 내가 그 아파트에 살면서도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의 모습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90년대부터 인천을 살아오면서 인천의 삶을 경험한 옹성우에게서 인천 토박이의 모습이 느껴졌다. 아파트의 놀이터와 주변 빌라 등을 보면서 즐거웠던 어린시절의 추억을 회상하였던 옹성우에게서 살던 아파트와 인천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졸업하였던 구월중 근처도 둘러보며, 자신이 어떻게 예고에 가게 되었는지, 인천시청역 지하철에 있는 청소년을 위한 춤 연습장(인천시청역 사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에서 거울을 보며 연예인의 꿈을 키워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옹성우가 구월동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마 옹성우도 어렸을 적 인천시청역에서 연습하지 않았을까 했던 나의 상상이 정답이 되었다.)
 
2019년에는 인천교육청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하였다. 인천교육청은 옹성우가 졸업한 구월중학교에서 불과 몇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옹성우는 인터넷 매체에서 흔히 조롱하는 범죄도시, 마계인천, 이부망천이 아니라 인천시청역이라는 평범한 곳에서 꿈을 키우며 살아갔던 한 명의 청소년이었다. 매스컴에서 떠드는 편견 섞인 곳이 아닌, 한 명의 시민으로서 인천에서 살아간 것이다. 
 
구월동 출신 연예인을 검색해보니 이한결이라는 아이돌도 알게 되었다. 프로듀스 101에도 나왔고 여러 개의 아이돌 그룹에서 데뷔하여 지금은 POLARIX로 활동 중이다. 인천상아초, 구월중을 졸업한 그야말로 구월동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행적이다. 이한결은 자신이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으며 가족의 의미를 알게 해 준 어머니께 감사하고 있다. 어머니는 사회복지사로 보육원 봉사를 하던 중 이한결을 입양하였다.
 
도시에 대해 흔히 가지고 있는 편견을 벗어나면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인천은 마계에 사는 악마들이 있는 곳이 아니다. 구월동에 있는 한 여성은 아이를 입양하여 행복한 가족 구성원으로서 성장시켰다. 그 아이는 인천 구월동에서 성장하며 가수의 꿈을 위해 전진했다.
 
인천을 일컬어 망해서 가는 도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서울 등에서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안 되어서 온 사람들이다. 혹은 지방에서 망해도 인천으로 온다고 하는데 지방의 일자리가 부족하여 인천으로 이사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서 망해도 인천, 지방에서 망해도 인천이다.
 
하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도시라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가. 그리고 그런 사회 인프라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이 도시는 다시 열심히 일하여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쉼이 되어주는 역할을 한다. 비단 실패해서 오는 도시만은 아니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은퇴하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고 공항과 가깝고 쾌적한 송도로 이사를 오는 노부부도 있다. 
 
국가공무원 시험에서도 인천은 다른 도시에 비해 합격선이 낮은 경우가 많다. 소방, 경찰, 초등임용 등 인천의 공무원시험 합격선은 지방보다도 낮다. 물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며 가끔씩 예외가 생기기도 한다. 합격한 후 수도권의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장점이 크다. 그렇기에 전국 곳곳에서 수험생이 몰려드는 도시이며 지역색이 적은 직장 분위기가 형성된다. 지역 차별이 있다던가 지역 동호회 등이 활성화된 도시가 아니다.
 
이렇듯 인천은 바다와 같이 모든 사람들을 품어주는 도시이다. 마계인천이라는 단어를 누군가 사용해도 웃어 넘기는 인천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씨처럼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해외 이민을 시도하다 잘 안되어서 한국으로 도망쳐서 올 때 인천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곳이 인천이다.
 
처음부터 인천에서 살았든, 망해서 인천으로 오든, 다시 성공해서 원하는 곳으로 가든, 아니면 성공해도 계속 인천에 남아있든, 인천 사람들은 그곳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인천을 떠난 후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긋지긋하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사람들의 관점이 개인적으로 더 이해가 간다. 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천에서 10년 동안 교사를 하고 난 후 그만두었다. 병원도 많이 다녔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10년 전, 내가 살았던, 옹성우도 살았던 그 아파트의 벤치에서 나는 밤늦게 학부모와 상담 전화를 하며 학부모가 고함지르는 것을 그냥 듣기만 하였다. 집이 아닌 아파트 벤치에서 상담 전화를 한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집 안을 지옥과 같은 곳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옹성우에게는 즐거운 어린 시절이 깃들어있고 학교로 등교하는 길에 마주하는 장소였다면, 나에게는 2016년 끔찍한 상담 전화를 할 수밖에 없었던 장소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계인천'이라는 단어는 인천에서 죽을만큼 힘들었던 나 같은 사람들이 쓸만한 단어는 전혀 아니라고 본다. 정말 힘들면 그런 말들은 애들 장난이자 우스갯소리에 그친다. 그럼 누가 이런 말들을 사용할까...?)
 
그럼 굳이 이런 글을 왜 쓰냐고 묻는다면, 방금까지 언급하였던 옹성우의 브이로그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옹성우와 내가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는 동질감에 반가웠다. 하지만 옹성우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아파트가 세워지기 전의 모습도 알려주고, 근처의 아파트와 빌라가 예전에는 어땠는지 알려주는 모습을 보며 오랜 인천 시민의 관점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살아온 공간을 소중히 여기며 추억을 공유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따뜻했다. 오랜만에 간 아파트에서 예전에 돌봐주었던 큰엄마를 만나서 반갑게 인사하고 포옹하는 모습, 어릴 적 살았던 상인천초에 가서 문방구에서 인사하는 모습, 월드컵 경기를 응원했던 아파트에 가서 20년 전 어린 시절과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 모습들 모두가 가을날의 낙엽처럼 포근했다.
 
그렇다고 내가 인천을 정말 사랑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인천에 대해서 나는 내 마음속에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어린 시절에 산 것도 아니고 20년전에 인천에 와서 지금까지 살아왔고 직장도 다니면서 겪은 피로감, 절망감이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퍼져 있었다. 정치인들이나 네티즌들에 의해 프레임이 씌워지는 모습도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그 안에 살아가는 진짜 사람들의 모습들, 구월동의 어릴 적 모습들을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 조그마한 울림을 주었다는 그 정도이다.
지치고 피로한 곳으로만 알았던, 누군가에게는 삶의 현장이기만 한 곳이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을 보내는 곳이었다는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자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도시이고,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관점마저 참 인천스럽지 않은가. 
 
 
 

Posted by 세루리안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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