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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9'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5.04.09 이행할 필요 없었던 나의 의무
  2. 2025.04.09 내가 있었던 곳 1

2004년의 어느 여름이었다. 
우리 가족은 서울에 갔다. 
서울에서 우리 가족은 우리 어머니의 친구들을 만났다.
미국에서 온 우리 어머니의 친구 가족, 그리고 서울에서 부유하게 살고 있는 어머니 친구 가족과 우리 가족은 한강에서 만났다.
 
LA에서 온 우리 어머니 친구(어머니는 그분을 LA엄마라고 친근하게 부르라고 했다.)에게는 어린 아들과 딸이 있었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살다 온 교포라서 그런지 한국의 어린이들과는 묘하게 다른 느낌이 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제일 기억하는 사람은 어머니의 부자 친구와 그 분의 딸이었다. 어머니의 부자 친구분은 매우 늘씬하고 아름다웠고 그분은 딸을 데리고 왔다. 아들은 미국 유학 중이라고 하였다. 
그 딸은 나보다 몇 살 어린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하지만 나보다 키가 좀 더 컸으며 뼈대도 가늘고 날씬하였다. 편한 나시 옷을 입고 핸드폰을 목걸이에 차고 있는 그 아이는 밝고 명랑하고 구김살이 없었다. 그 밝고 명랑함은 내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꾸밀 줄도 모르고 대충 어머니가 준 하늘색 폴로 셔츠를 입고 머리를 질끈 묶은 나는 난생처음으로 무언가와 대면했다는 느낌과 낯설다는 감정, 비교 의식을 느꼈다. 엄마의 LA 친구분의 자식들에게 쭈뼛쭈뼛한 나와는 달리 그 여자아이는 밝게 그 어린이들에게 다가가며 친근하게 대화도 나누었다. 
 
그때 보았던 영화도 기억이 난다. 권상우와 하지원이 나왔던 [신부수업]이라는 영화였다. 좌석이 없어서 그런지 거의 맨 앞 좌석에서 눕다시피 하면서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여자아이가 명랑하게 웃으며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밤에는 모두 다 한강유람선을 탔다. 캄캄한 밤에 한강변에 밝게 빛나는 집들은 여행의 이정표가 되는 것 같았다. 그 때 어머니의 친구는 한강변의 집을 가리키며 자신의 집이라고 소개했다. 월드메X디앙이라는 아파트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한강변의 아파트는 꽤 비싸고 고급 아파트였다. 내부 인테리어를 하는데 2억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2억이면 무척 큰돈이지만 20년 전에는 그 가치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한강 유람선을 타고 어머니의 LA친구분의 차를 타고 그분이 한국에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로 갔다. 우리 가족은 그 집에서 하룻밤 자고 떠나기로 했다. 가는 길 중간에 어머니의 부자 친구분이 살고 계신 월드 메X디앙에 그 친구분과 딸을 중간에 내려주고 갔다. 그 딸은 명랑하게 인사를 하며 할머니를 부르며 집으로 들어갔다.
 
2004년의 서울에서의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후, 나의 마음속 한 구석에는 무거움과 불편함이 생겼다.
 
명랑하고 아름다운 어머니 부자 친구 모녀도 떠올랐을뿐더러, 그것에 대비해 우리 어머니의 처지와도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교사였던 어머니는 나를 낳고 수학 과외를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고, IMF 무렵에는 학원도 경영하였다. 교사였던 아버지와 과외를 하는 어머니 덕에 생계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나, 그것은 부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머니는 1000원짜리 물건 하나 사는데도 손이 떨릴 때가 있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고등학교 때 이과 500명 중에서 1등을 한 적도 있다고 하였고, 결국에는 지방 국립대를 가기는 했으나 교직 이수를 통하여 수학 교사가 되었다.
 
어머니는 가끔씩 농담을 하면서 자신의 친구 중에 공부를 정말 못했던 동창도 부자를 만나서 아주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 또한 나에게는 무언의 의무감으로 느껴졌다.
 
어머니는 단순히 수학 과외만 한 것이 아니라 가정일도 병행하였다. 수학 과외는 집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직장과 가정 일은 분리될 수 없었다. 
 
2004년 서울로의 가족 여행 후에, 나의 사고의 방향은 이런 어머니의 처지를 지나치게 이해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정말 잘했지만 현재는 힘들게 일하는 어머니가 가엾다, 내가 어머니의 말을 잘 들어서 어머니를 힘들게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생각을 했다.
 
결국에 나는 어머니에게 불만이 있어도 참는 방향으로 지냈고, 더욱 순종적이게 되었다. 대학 입시에서는 아주 조금의 의사 표시는 해보았지만, 결국에는 강하게 밀어붙이는 어머니의 말에 따랐다.
 
 
 
 
 
 
20년이 지났고 2024년이 되었다. 어렸을 적 지방에서 살았고 서울은 아주 가끔 가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는 어른이 되어서 수도권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서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가 되었고 가끔씩 드라이브를 하는 장소가 되었다.
 
나의 취미는 한강에서 공용 자전거인 따릉이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릴 때마다 나는 '서울만 한 도시는 세계에도 없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서울을 사랑한다.
 
내비게이션을 타고 한강 공원을 찍고 운전을 하는 중, 나는 길을 잘못 들었다. 골목을 헤치며 운전하는 중, 나는 20년 전에 보았던 그 월드메X디앙 아파트를 다시 보게 되었다.
 
한강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나는 차 안이 떠내려갈 정도로 한참 동안을 펑펑 울었다. 20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20년 전에 했던 나의 마음가짐이 나에게 끼친 영향 때문이다.
 
내가 어머니를 위해 했던 다짐은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후에 떠올려보면, 그것은 정말로 필요가 없었던 다짐이었고, 내가 이행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의무였을 뿐이다.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가 선택한 것이다. 아버지와 결혼한 것도, 나를 낳은 것도 어머니의 선택이었다. 어머니의 선택에 대해 내가 책임을 져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어렸을 적, 나는 가정에서 보호를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것까지 생각하면 나의 선택이 남을 배려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을 커 가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신의 인생의 선택을 불행하다고 말한 적도 없었는데, 내가 지나치게 드라마틱하게 바라본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나의 희생적인 선택이, 결론적으로는 나를 불행하게 하였기 때문에 주변인들도 곤란하게 만드는 선택을 하였다.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내가 과거의 나 자신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지점들이 몇 가지가 있다. 그중의 하나가 2004년 여름이다. 그때의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지켜야 할 의무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제발. 20년 후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다가와주기를 바란다. 지금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지, 내가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의무라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말해주었으면 한다. 21년 전, 15년 전의 잘못된 생각들이 나에게 커다란 짐이 된 것처럼 지금의 나도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 자신은 미래의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현명한 나 자신이 과거로 돌아와 나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바란다.

Posted by 세루리안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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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었던 곳

생각 / 2025. 4. 9. 10:05

작년에 기간제 했던 학교에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교실을 나오기 직전에 사진을 찍어보았다.

 

선생님들도 다 퇴근하고 아이들도 없는 시간의 학교는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어찌 되었든, 나의 정체성 중의 상당 부분이 교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든지 말이다.

나의 지금부터 40대까지 약 10 몇 년간의 시간을 더 거친다면 그때는 나 자신을 어떻게 정의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학교에서 저녁 시간까지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과 과학 선생님과 작별을 하며 학교를 나왔다.

저녁이라는 시간은 묘하다. 모든 것을 포근히 감싸 앉는 시간이다.

밤이 있으면 다시 낮이 있듯이 고요했던 학교도 다음 날 아침이면 학생들의 발걸음으로 가득 찰 것이다. 

이때가 10월 말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날씨가 딱 선선하고 바람도 적당히 불어서 

이 순간의 기억이 참 포근하다.

 

내가 있었던 마지막 학교

경력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계약이 끝난 다음날 다시 학교에 와서 사진을 찍었다.

 

땅은 단단히 얼어붙었다. 하지만 계속하여 단단할 것만 같은 이 땅도 시간이 지나면 녹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고 나서 3개월이 지났다. 

지금 내가 있는 지역은 겨울에는 -20, -30도 되는 지역이지만 4월이 된 오늘 밖을 나가니 덥기까지 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학교 운동장도 녹지 않았을까 싶다.

 

자연에서 두렵지만 가장 경이로운 점은,

내 인생이 어떻게 되든, 내가 망하든 

꽃은 피어나고 낙엽은 지고 자연은 순환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게 나의 마음을 어쩌면 편안하게 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갈 것이라고 몇 달 전에 생각했다.

그 쏜살같이 흘러가는 시간의 길이 속에서 잠시 멈추어 과거를 떠올려보았다.

작년 한 해와 작년의 그 차가운 겨울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2024년의 나의 모습을 말이다.

 

Posted by 세루리안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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