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에게조차 나에 대한 증명 같은 것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어렸을 때는, 남들의 말을 잘 듣고 사회에 순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터무니없더라도 남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초등학교 임용고사를 볼 당위성이 없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도 않고 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에
고향에 내려와서 부모님과 심각한 소모적인 충돌이 일어날 때도,
그다음 해 고향을 도망치듯 떠나와 대학을 다녔던 지역의 기간제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들에게 모욕과 쌍욕을 받았을 때도,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나 자신의 열망은 없었다.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 자체를 내가 우습게 여기고 경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인생에서의 그 출발 자체가 나의 선택이 아닌 타인의 강요에 의한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가족의 강요로 인해서 교대가 아닌 다른 대학교를 입학했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싫었을 것이다. 아마, 초등학교 교사의 교권이 지금처럼 나쁜 것이 아니라 최고의 황금기라고 하더라도 나는 똑같이 그만두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결정에 의해서 내 인생의 중요한 방향이 결정되었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마음속 한구석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왜 그렇게 하기도 싫은 임용고사를 보고 교사가 되었는가 떠올려본다면 그 당시의 나의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만약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겠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익명의 사람들이 나를 비난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등교사 그깟것 몇 대 몇 안 하는 것을 통과 못하면 니가 뭘 할 수 있겠냐?'
'교대 나온 사람들은 별 능력도 없던데 초등학교 교사라도 되어야지.'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이 초등교사가 싫어서 안한다는 마음가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그깟 것 몇 대 몇 안 하는 초등 임용고사를 통과 못해서 초등교사를 포기하는 사람이 싫어서 꾸역꾸역 시험을 보았다. 결국에는 공립학교 교사가 되었다.
10 몇 년 전, 초임 교사 생활을 하면서, 수백 수천 개의 교권침해 사례가 올라오는 초등교사 커뮤니티인 인디XX에도 쓸 엄두조차도 나지 않는 일들을 겪었고 몇 년째 병원도 다녔고 지금도 정신적인 붕괴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또한 그만두기 1년 전까지도 계속하여 힘든 학급을 맡았다.
그러면 왜 초임때 교사를 그만두지 않았는가. 나는 또 이러한 생각을 했다.
'내가 교직에서 최고로 행복할 때 교사를 그만두어야겠다. 그래야 내가 교사를 그만두게 된 이유가 교사가 힘들어서 그만둔 것이 아니라 원래 이유처럼 내 의지로 시작해서 한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남들의 시선과 나만의 엄격한 기준에 따라서 이유를 만들었고 증명을 하려고 하였다.
게다가, 그 와중에 결혼까지 하게 되어서 교사를 그만두기 어려운 상황도 생기게 되었다.
계속하여 교직 생활을 하던 중, 2020년 코로나 발생 시기때 긴급돌봄 업무를 맡게 되었다.
원래 학교에서 돌봄 업무도 힘든 일이지만 갑자기 코로나로 인해 업무 분장에도 없는 '긴급' 돌봄 업무까지 추가로 맡게 되었고 코로나로 인해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선생님들의 업무는 거의 사라진 반면에 돌봄 업무는 배가 되어버리는 현상이 생겼다. 학교 전반의 업무를 담당하며 학교에서 업무가 제일 많은 교무부장조차도 나를 보며 '선생님이 학교에서 제일 바쁜 것 알고 있다. 힘내라.'라면서 나를 위로할 정도였다.
매일 학급을 위한 온라인 줌 수업을 준비함과 동시에 긴급돌봄으로 학교에 나온 학생들의 출결 상황을 파악하여 교육청에 보고하고, 도시락 업체와 계약하여 매일매일 점심도 준비하고, 방과후 돌봄 강사 면접 및 계약, 출결관리 등 일만 하다가 앓아누운 적도 많았다.
어느 날, 밤 늦게까지 학교 교무실무사와 연락하며 긴급돌봄 아이들 명단을 정리하고 있을 때 뉴스를 하나 보게 되었다.
서울시교육감이 "학교에서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월급만 받고 일을 안 하는 집단도 있습니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다. 돈만 받고 일을 안 하는 집단은 맥락상 분명히 '교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 말에 화가 난 교사들은 서울시교육감에게 항의를 했으며 서울시교육감은 짤막한 사과문을 기재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 서울시교육감 눈에는 매일 수업을 하며 집에서도 밤 늦게까지 긴급돌봄 업무를 하는 나 같은 교사들은 보이지도 않는 건지, 긴급돌봄 업무를 맡는 전국의 수천 명의 초등교사들은 안중에도 없는 건지 너무 화가 났다. 사실, 지금까지도 그 교육감은 정말 싫다.
비단 코로나 기간 뿐만이 아니었다. 교사들은 그저 월급쟁이이며 월급충, 방학만 있어서 꿀 빠는 직업. 아이들을 생각하기보다는 돈만 생각하는 직업. 교사만 해서 세상 물정은 하나도 모르고 생각도 초딩 수준인 직업일 뿐이었다.
글쎄.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을 데려다가 내가 맡았던 모든 학급에 교사를 해보라고 시키면 일주일도 안되서 다들 줄행랑을 칠 텐데.
한 번은 내가 자주 가는 동네 맘카페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교사들을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아라, 그래도 요즘 선생님들은 다들 최선을 다한다, 나는 학생에게 심각한 성추행을 당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참고 교사직을 한다 등의 짤막한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열개 정도 댓글이 달렸다. 댓글 하나 정도만 요즘 선생님들 고생한다는 것 안다는 내용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그래요? 그래서요? 이런 댓글이었다. 어떤 댓글은 요즘 선생님들이 스승이냐, 공무원일 뿐이지.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래서요? 나는 학창 시절에 선생님한테 폭행당한 적도 있는데 요즘 선생님들이 겪는 것은 업보일 뿐이다.라는 글이었다.
내가 임용고사 준비생이었을 때, 나는 내가 임용고사에 합격하면 나를 증명하고 정당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더 이상 너의 능력이 없어서 초등교사가 되네 못되네 이런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고 떳떳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등교사가 되니 나는 또 다른 비난에 직면하였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월급충, 꿀 빠는 직업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내가 나를 충분히 증명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나는 무척 허무해졌다. 도대체 그 익명의 사람들의 정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건가. 그 사람들에게 나를 증명한다고 한들 나를 귀하게 여겨줄 것인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일말의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증명을 하려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초등학교 교사를 자의로 그만두었고 원점보다도 더 안 좋은 상황에 돌아왔다.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진로나 계획을 설정할 때 다른 사람에게 정당화하거나 증명하려는 노력은 아주 조금도 하지 않을 거라는 확고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사회의 관습, 혹은 나 스스로의 존재 가치의 증명이나 압박감에 내 인생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나는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도 증명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게 얼마나 허무한지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나이와 관련하여 내 귀를 거스르게 하는 것이 있다. 여자 나이 40대면 아줌마이고 이모이고 늙었고 직업의 기회가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조차 신경 쓸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아줌마, 이모라고 부르고 나의 직업에 대해 왈가왈부한들 그것은 그들의 몫이고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끝나는 것이다. 어차피 내가 사회의 시선에 맞추어 단장을 하고 외모를 꾸미고 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발버둥 치고 설사 그 목표를 이룬다 한들, 여전히 날 선 말들은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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