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파를 정말 싫어한다.
그 감정의 과잉, 억지 눈물 등은 사람을 정말 질리게 한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학교의 행사 중 대표적인 신파는 수련회 중 캠프파이어며
인터넷에서 주기적으로 끌어올려져서 학교를 조리돌림하는데 사용되는 소재이다.
물론, 군대식 교관과 억지 슬픔을 짜내는 수련회는 사라진 지 오래이다.
7,8년 전에 학생들을 이끌고 수학여행을 갔을 때 만났던 교관들은 과거 20년전의 교관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교관들 스스로도 우리는 그러한 군대식 교관이 아니며
학생들을 안전하게 지도하고 즐겁게 수학여행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학생들에게 화내거나 강압적으로 굴지도 않는다.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학생들을 들었다 놨다 휘어잡는 노련한 사람들이다.
진정한 전문성이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안전을 위해 수학여행에서는 캠프파이어를 하지도 않는다.
나도 20 몇 년 전, 6학년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밤이 되자 수학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캠프파이어 의식이 시작되었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에서 노래를 부르고 손에 손잡고 원을 그리며 돌며 의식은 고조되었고
점점 슬픈 음악이 흘러나오며 교관은 점점 바람을 잡기 시작했다.
지금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십니까? 부터 시작해서 온갖 미사여구와 교훈이 짬뽕된 이야기를 늘어놓고
지금 여러분의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라는 말까지 꺼냈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훌쩍이기 시작했다. 교관의 말은 분명히 터무니없고 괜히 억지 눈물을 짜내고
감정의 과잉을 불러일으키는 말들이었다.
훌쩍이던 아이들은 이제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아이들과 함께 펑펑 울었다.
정말 슬퍼서가 아니라 나도 울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 전 해에, 나는 반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한 적도 있었다.
그 때 갔던 수련회에서는 혼자 모든 것을 감내해야 했다.
6학년이 되어서 나를 괴롭혔던 애와는 다른 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록 6학년이 되어서도 완전히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은 없었지만 반에서 어느 정도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이 생겼다.
나도 드디어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5학년 때 캠프파이어에서는 결코 울 수 없었고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6학년 때의 캠프파이어는 기나긴 왕따의 끝이었으며 나는 아이들과 함께 펑펑 울음으로써 내 감정을 해소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카타르시스적인 감정이었던 것이었다. 나도 반 아이들처럼 평범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열망이 실현되었던 순간인 것이다.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 그 전날 편지를 썼는지 5학년 때 나를 괴롭혔던 애들이 작년에는 미안했다며 나에게 편지를 주었다.
코웃음이 나왔다. 분명히 수학여행 때 감정이 고조되어서 쓴 글이겠지. 너무 쉽게 용서를 구하는 것 아닌가? 어설픈 글 몇 마디로 나의 평생의 고통이 쉽게 사라질 것 같아? 나는 속으로 비웃으며 그 편지를 구겨서 버렸다.
가끔은 그것이 눈에 훤히 보이고 바보같을지라도 나 자신을 위해서 그러한 행동을 할 때가 인생에는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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