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태국 파견 이야기 (1)
6년 전에, 태국 방콕 근교의 한 초등학교에 파견 근무를 간 적이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해외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나였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나와 해외와는 큰 연관이 없을 줄 알고 살았다. 하지만 운이 좋게 코로나 직전에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몇달간 태국에 다녀왔다. (코로나가 유행하고 몇년 동안은 프로그램이 중단되었고 그 직전에 참 운이 좋게 다녀온 것이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후 태국에 가서 태국 문화와 언어 등의 교육을 받고 2달 반 동안 방콕 근교의 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 학교 당 2명씩 파견이 되었고 나는 나의 짝 선생님과 함께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함께 있는 학교로 파견이 되었다. (짝 선생님은 중등이라서 중학생을 가르쳤고 나는 초등학생을 가르쳤다.)
학교는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나는 특히 분홍색 벽과 작은 간판이 좋았다. 나는 태국의 학교들은 내가 갔던 곳처럼 다 예쁘게 꾸며져 있을줄 알았지만 다른 태국의 학교를 살펴보니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학교의 초등학생들은 외국인 선생님을 처음 보았다고 학교 선생님이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은 나와 짝 선생님을 신기해했다.
많은 학생들이 그랬지만 특히 6학년 학생들은 나와 짝 선생님이 근무하던 교무실로 많이 찾아왔다.
그 학생들은 태국어를 할줄 알고 영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은 내 앞에서 번역기에 태국어로 글을 쓴 다음 영어로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 중에서 대다수는 이런 내용이었다.
"저는 선생님이 좋아요."
"저는 선생님이 이 학교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학교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아이들에게 감동을 받았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전교의 학생들이 외국인 선생님 수업을 경험하기를 원했으며 그래서 나는 2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양한 학생들에게 수학, 과학, 영어를 가르치도록 시간표가 짜여졌다.
학생들에게 예상치 못한 사랑을 받았고 그건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누가 나한테 이 삶이 여기까지라고 해도 오히려 만족했을것 같을 정도였다. 아이들과의 아름답고 예쁜 추억을 안고 삶에서 더 나쁜 기억 없이 마무리한다는것이 참 좋을테니 말이다.
태국의 학교는 특이한 행사가 참 많았다. 그 중의 하나는 광고 회사들이 학교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수업 시간은 하지 않고 학생들은 운동장에 모여 광고 회사의 광고를 듣고 물건을 받는다. 태국의 유명한 두유 회사도 프로모션 겸 학교에 방문하였다.
그렇게 해서 내가 예정된 수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수업을 안 해서 좋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이래도 괜찮나 싶었다.
특히 나를 제일 좋아하는 6학년 학생들 수업 시간과 그런 행사들이 많이 겹쳐서 한동안 6학년 학생들을 보지 못했다.
6학년 수업이 들었던 어느날, 교장선생님은 나에게 이러한 말을 했다. 학교 선생님들끼리 근처 사원에 가는데 선생님도 따라가는게 어떻겠냐 라고 말이다.
교장선생님께서는 나와 짝 선생님께 평소에도 과분할 정도로 많은 것을 베풀어주셨고 태국 음식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래서 교장선생님의 이러한 제안이 그러한 마음의 연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교장선생님, 저는 6학년 수업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 가지 않고 6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겠습니다." 교장선생님은 흔쾌히 내 의견을 존중해주셨다.
내가 수업을 할 지 안 할지 궁금해했던 6학년 학생들은 내가 남아서 수업을 가르친다고 하니까 "예~!" 하면서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6학년 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을 보며 2012년의 상황이 오버랩되었다.
기간제 음악 교사로 6학년 학생들을 가르쳤을 때, 학생들은 무례했고 떠들었다. 화가 난 내가 문을 열고 교실을 나가자마자 등 뒤에서는 학생들이 환호하고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기간제 했던 학교 학생들에게 나는 비아냥과 조롱으로서의 환호성을 들었지만 태국 학교에서는 나에게 존중과 사랑으로서의 환호성을 들었다.
그래서 그런가, 나의 10년 넘은 교사 생활 중 태국에서 보냈던 몇 개월은 교사로서의 나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세워주었으며 학생들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태국에서 착한 학생들을 만났던 것이 한국에서의 모든 나쁜 기억을 덜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몇 개월은 나의 교사 생활 중에서 최고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과 헤어지기 한 두달 전부터, 나는 착하고 예쁜 태국 학생들과 헤어진다는 것이 너무 슬퍼서 집에서 혼자 운적도 있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 가기 직전, 6학년 학생들, 그리고 나를 특히나 따랐던 총명하고 예쁜 6학년 여학생들은 더욱 슬프게 울었다. 나는 이미 울만큼 울어서 헤어지는 날에는 울지 않았지만, 학생들을 토닥이며 달래주었다.
세상에는 살아있지만 다시는 못 만나거나 만나기 거의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태국의 학생들이 그럴 것이다. 6년 전에 6학년이었던 학생들은 이제 거의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온 선생님은 아직도 너희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너희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태국에 안 좋은 뉴스가 나오면 내가 가르쳤던 총명하고 착했던 6학년 학생들이 특히나 걱정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걱정되는 마음이 컸다.
태국과 불교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새 학기 시작 날에 학생들은 근처 사원에 가서 불공을 드리며 교내 아침 조회 시간에조차 선생님은 '카르마'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학생들에게 설교를 한다.
그래서, 나도 불교의 관점을 사용하고자 한다. 만약 다음 생애가 있다면 태국에서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을 한번 만나볼 수 있기를.
나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었던 그 학생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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