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9일
Blessing in disguise라는 말이 있다. 한국어로는 전화위복이다.
나쁜 일인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복이었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는 2012년의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불행인 줄로만 알았던 그 일들을 내가 복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간제 전담을 했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씨XX이라는 욕을 먹었을 때, 한 반 전체가 나의 수업을 보이콧했을 때, 그 때 임용 준비생인 나는 이렇게 욕을 먹는 직업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였다.
그 말을 내가 듣고 따랐었다면, 그것을 내가 하늘이 준 기회로 여기고 그렇게 했더라면,
공립교사로 임용된 후 유황불을 걷는 듯한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변명하자면 그 때는 2012년이었고, 교대 졸업생은 모두다 교사 아니면 다른 직업을 하지 않는 시대였다. 예외적으로 같은 과의 선배 한명이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스포츠 아나운서를 하기는 했지만 대다수는 임용고사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직업조차 계속 도전하여 합격하고 그 후에 그만두는 것이 내 인생에 진정으로 책임을 지는 것으로 생각했디.
그 상황을 거시적인 방법에서 비틀어보고,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그 당시에는 나에게 어려웠다.
그 기간제 교사를 하며 보란 듯이 임용고사에 합격했었어야 했는데 그것조차 나는 해내지 못했다. 내가 보았던 지역이 전년도에 비해 커트라인이 갑자기 12점이나 올랐고 나는 1점 차이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1점 차이라는 것은 내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사실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중이다.
만약에 아예 2012년에 임용고사를 보지 않고 나의 인생의 책임감과 선악에 경중을 두지 않았으며, 2012년에 임용고사에 떨어진 후 나의 다짐대로 벌어둔 약간의 돈으로 내가 가고 싶었던 해외로 도피하였다면, 부모의 뜻에 따라 그 후로 강제로 노량진에 가지 않았다면 삶의 방향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안정되게 살고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서 말이다.
그래서 과거의 실수로부터 나는 배워야 한다.
지금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안정을 찾는다면, 그것 또한 내가 가진 상황을 비틀어 해석하지 못하고,
불행으로 가장한 축복을 놓치는 상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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